fnctId=bbs,fnctNo=3398
- 작성일
- 2009.12.01
- 수정일
- 2009.12.01
- 작성자
- 정민수
- 조회수
- 662
행복에의 단상
김경민
교육심리석사과정
옛날 어느 날, 황새의 발이 진흙 뻘에 빠져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몸부림치던 황새는 긴 부리를 진흙에 박아 발을 빼냈다. 이제 다시 부리를 빼내려는데 힘만 들뿐 그 부리는 빠지지 않았다. 다시 두 발을 진흙 뻘에 대고 부리를 꺼냈지만 또 다시 발이 나오질 않았다. 이러기를 수십 번 반복하다 그 황새는 아름다운 날개 짓으로 하늘 한번 날아보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는 씁쓸한 이야기가 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도 이렇게 이거 하나 빼내면 저것이 근심 속에 박히고, 저것 빼내고 나면 또 그것이 고통 중에 박혀서 움직이지 못하는 영혼의 진흙 속에 머물러 진정한 행복의 나라도 구경해 보지 못하는게 아닌가 싶다. 그 많은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장점이 불행의 늪에 빠져 작동시킬 수 없는 그런 비극 속에서 더욱 더 몸부림치다가 탈진하고 노쇠하여 험악한 세월을 살았노라 회상하며 눈을 감는 것은 아닐까?
앞에서의 황새처럼 혼자 몸부림 하도록, 그러다 비참하게 슬픈 이야기로 끝을 맺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 아니다. 인간은 함께 더불어 살아가도록 창조되었고 인류의 존재이래로 많은 크고 작은 역사가 함께 살아왔음을 증명한다. 이러한 공동체적 삶에서 우리는 또 다른 고통의 쓴 맛을 경험하며 인생의 단 맛을 간절히 소망하지만 관계 속의 쓴 맛은 연속적인 우리의 삶의 물이 되곤 한다. 물론 쓴 맛이 인생의 약이라는 논리가 있기도 하며 일부 맞는 소리이기도 하지만, 어찌 끊일 줄 모르는 괴로움의 맛을 즐길 수 있단 말인가?
늘 대하는 관계 속에서 행복감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언제나 경험하는 것 이상이란 말인가? 다행이도 우리에겐 \"말\"이란 엄청난 괴력의 도구가 있음은 감사한다. 이 \"말\"이 잘 통하는 것을 요즘 뜨는 언어로 \"소통\"이라 하자. 이 \"소통\"속에 우리의 행복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소통\"의 기술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 점검해 보도록 하자.
상대방과의 첫마디를 어떻게 꺼냈냐가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첫 인상이 평생을 가는 것처럼 \"소통\"의 근본은 첫마디라 하겠다. 즉 비판적인 말보다는 칭찬의 말을 먼저 꺼내야 상대방이 편안함을 느낀다. 뻔한 칭찬이지만 상대의 미음을 허무는 효과가 있음이 실험적으로 증명되기도 했다.
둘째, 자신의 손바닥을 보여주고 먼저 자신을 털어놓는 것이다. 이것은 상대방이 내 편임을 인정한다는 느낌을 주므로 방어기제를 거두고 호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소통\"을 위해 말 만 해야 하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잘 듣는 기술 또한 말하는 것만큼 중요한 요소이다. 반응이 좋아야 사람도 좋아지는 게 우리의 기본 감정이므로 상대방 말을 놓치지 않으려 집중하며 들어주는 것이 좋다. 감정적 반응을 하며 추임새를 잘 넣는 것도 필요하다.
또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것보다 관계를 중시하는 게 좋겠다. 이 때 결과는 마음에 두지 말라. 사람을 고치는 것은 내가 아니요, 상대를 고치려 하면 불행의 궤도를 타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행복의 구슬을 꿰기 위해 편집을 잘하는 인생이 되자. 자질구레하고 상세한 것들은 과감히 잘라내고 아름답고 멋진 영상만을 머리에 채우자. 그리하여 언제나 감미롭고 잔잔한 삶의 영상으로 채워지는 인생의 파노라마를 펼치자. 언제 재생해도 가슴 잔잔한 행복의 언어들로 우리의 삶의 드라마를 날마다 찍자.
교육심리석사과정
옛날 어느 날, 황새의 발이 진흙 뻘에 빠져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몸부림치던 황새는 긴 부리를 진흙에 박아 발을 빼냈다. 이제 다시 부리를 빼내려는데 힘만 들뿐 그 부리는 빠지지 않았다. 다시 두 발을 진흙 뻘에 대고 부리를 꺼냈지만 또 다시 발이 나오질 않았다. 이러기를 수십 번 반복하다 그 황새는 아름다운 날개 짓으로 하늘 한번 날아보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는 씁쓸한 이야기가 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도 이렇게 이거 하나 빼내면 저것이 근심 속에 박히고, 저것 빼내고 나면 또 그것이 고통 중에 박혀서 움직이지 못하는 영혼의 진흙 속에 머물러 진정한 행복의 나라도 구경해 보지 못하는게 아닌가 싶다. 그 많은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장점이 불행의 늪에 빠져 작동시킬 수 없는 그런 비극 속에서 더욱 더 몸부림치다가 탈진하고 노쇠하여 험악한 세월을 살았노라 회상하며 눈을 감는 것은 아닐까?
앞에서의 황새처럼 혼자 몸부림 하도록, 그러다 비참하게 슬픈 이야기로 끝을 맺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 아니다. 인간은 함께 더불어 살아가도록 창조되었고 인류의 존재이래로 많은 크고 작은 역사가 함께 살아왔음을 증명한다. 이러한 공동체적 삶에서 우리는 또 다른 고통의 쓴 맛을 경험하며 인생의 단 맛을 간절히 소망하지만 관계 속의 쓴 맛은 연속적인 우리의 삶의 물이 되곤 한다. 물론 쓴 맛이 인생의 약이라는 논리가 있기도 하며 일부 맞는 소리이기도 하지만, 어찌 끊일 줄 모르는 괴로움의 맛을 즐길 수 있단 말인가?
늘 대하는 관계 속에서 행복감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언제나 경험하는 것 이상이란 말인가? 다행이도 우리에겐 \"말\"이란 엄청난 괴력의 도구가 있음은 감사한다. 이 \"말\"이 잘 통하는 것을 요즘 뜨는 언어로 \"소통\"이라 하자. 이 \"소통\"속에 우리의 행복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소통\"의 기술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 점검해 보도록 하자.
상대방과의 첫마디를 어떻게 꺼냈냐가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첫 인상이 평생을 가는 것처럼 \"소통\"의 근본은 첫마디라 하겠다. 즉 비판적인 말보다는 칭찬의 말을 먼저 꺼내야 상대방이 편안함을 느낀다. 뻔한 칭찬이지만 상대의 미음을 허무는 효과가 있음이 실험적으로 증명되기도 했다.
둘째, 자신의 손바닥을 보여주고 먼저 자신을 털어놓는 것이다. 이것은 상대방이 내 편임을 인정한다는 느낌을 주므로 방어기제를 거두고 호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소통\"을 위해 말 만 해야 하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잘 듣는 기술 또한 말하는 것만큼 중요한 요소이다. 반응이 좋아야 사람도 좋아지는 게 우리의 기본 감정이므로 상대방 말을 놓치지 않으려 집중하며 들어주는 것이 좋다. 감정적 반응을 하며 추임새를 잘 넣는 것도 필요하다.
또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것보다 관계를 중시하는 게 좋겠다. 이 때 결과는 마음에 두지 말라. 사람을 고치는 것은 내가 아니요, 상대를 고치려 하면 불행의 궤도를 타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행복의 구슬을 꿰기 위해 편집을 잘하는 인생이 되자. 자질구레하고 상세한 것들은 과감히 잘라내고 아름답고 멋진 영상만을 머리에 채우자. 그리하여 언제나 감미롭고 잔잔한 삶의 영상으로 채워지는 인생의 파노라마를 펼치자. 언제 재생해도 가슴 잔잔한 행복의 언어들로 우리의 삶의 드라마를 날마다 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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